어제는 잠이 오지 않아서 늦게 잠들었다. 새벽에 가위에 눌렸는데, 조교가 문을 열고 일어나라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 아둥바둥거리다 소리를 지르며 깼다. 아침엔 6시에 눈이 떠졌으면 좋겠다. 조교가 깨워서 기상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일어나는 게 기분이 덜 나쁠 것 같다.
일과는 비슷했다.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조교 안내 하에 세탁기를 사용했다. 9시 30분에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위해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쐬면서, 연병장의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자신있다.’라고 쓰여진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군대에 와서 느낀 건 운명이란 게 마치 정해져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20년동안 오기라도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도 정해주고, 밥도 주고, 속옷도 보급품도 준다. 마치 꿈인 것만 같다라는 표현이 뭔 지 알 것만 같았다. 대학교 입학, 새 학기, 첫 자취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4일 전만 해도 자유롭게 바깥에 있었는데…
그래도 거꾸로 생각해보면 나는 군대같은 생활을 바래왔다. 불규칙적인 식사, 매일 새벽 3~4시에 자서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탈출하고 싶었다. 정해진 루틴에 따라 열심히 살고 싶었다. 얼마전 인기가 많았던 예능인 ‘가짜사나이’를 보면서도 내 자신이 변화하길 바랬다.
가만히 있어도는 되나 뒷짐을 지거나, 다리를 꼬고 있거나, 팔짱을 끼지 마라고 한다. 10시 30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으로 ”일과가 없다고 가만히 있지 말고 편지를 쓰든 책을 읽든 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안내가 나왔다. 하루종일 마스크를 끼고 생활관에만 갇혀 있자니 너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갇혀있는 동물들이 왜 빙글빙글 도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다른 생활관 쪽에서 신속항원검사 결과 확진자가 나왔는지, 짐을 싸라는 조교의 지시가 들려왔고 이윽고 몇 명의 훈련병들이 짐가방을 든 채 막사를 나갔다. 확진이 되면 호텔에 격리한다는데, 24시간 휴대폰도 쓸 수 있다는데. 차라리 확진된 게 너무 부러웠을 정도였다.
편지를 쓰고 싶어도 딱히 훈련을 받은 게 없어서 사람들에게 쓸 말이 없었다. 1시 반까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던 도중 중앙에서 조교도 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2시부터 5시까지 어제처럼 3시간 내내 교육영상 시청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과가 4일째가 되자 너무 갑갑하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옆 생활관에서 부적응을 이유로 퇴소를 희망한다는 조교와 훈련병의 대화가 들렸는데, 나도 당장이라도 퇴소하고 좀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도 신청해서 받을 수 있다는데, 혹시 상담한게 기록에 남게 되어서 상급부대 차출에 불이익이 있을까봐 상담도 신청할 수 없었다.
그러다 그냥 참자, 하고 단념하게 되었다. 돈을 버는 것이라 생각하자, 요즘은 1000만원도 모으니까 580일로 나누면 대략 2만원이다, 일당 2만원… 이제 8만원이 모였다, 라고 생각했다.
7시부터는 조교가 갑자기 TV를 보라 하더니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보았다. 2020년 코로나와 관련된 영상이었는데, 지금 코로나를 가볍게 대하는 것과 너무 분위기가 달라서 괴리감만 느껴졌다. 아마 저녁 시간에 그냥 놀게 냅두기는 애매하고 해서 영상을 보라고 한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내가 한국에서 왜 태어났을까, 정신전력 교육영상을 보고 애국심이 고취되기는 커녕, 내 아들은 절대 군대를 안 가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군대에서의 자살도, 편법으로 군대를 빼서 욕을 먹는 연예인들도 다 이해가 가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자기 전엔 조교들이 오더니, 궁금한 점을 생활관별로 모두 수합해서 방송으로 대답해준다고 했다. 대답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 신병교육기간은 총 6주이다. 6주차 수요일에 수료하게 되고, 같은 사단에 배치된다면 수료식 당일에 자대배치, 타 부대나 사단으로 이동하면 목요일에 자대배치를 받는다고 한다.
2. 지루하고 답답한 건 이해하겠으나, 전 기수 때는 확진자가 적어서 직접 조교의 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이번 기수는 확진자가 많아서 격리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신병교육가이드 책을 보던지, 제식 및 행동요령 영상을 돌려보면서 익히길 바란다.
3. 주말엔 종교활동 및 영화시청을 할 예정이다. 자거나 쉬어도 된다.
4. 내일부터 편지를 작성할 수 있다.
5. 격리가 해제되면 토요일에도 교육을 진행한다.
6. 다음주 월요일에 PCR 검사를 실시해서, 전원 음성이 나올 시 격리가 해제된다.
'나의 훈련소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훈련소 일기 6일차 : 일요일 주말 (0) | 2023.09.21 |
---|---|
나의 훈련소 일기 5일차 : 토요일 주말 (0) | 2023.09.20 |
나의 훈련소 일기 3일차 : 교육영상 시청 (1) | 2023.09.17 |
나의 훈련소 일기 2일차 : 신체검사 (0) | 2023.09.17 |
나의 훈련소 일기 1일차 : 입소, 개인용품 배부 (0) | 2023.09.11 |